좌랑공파 포항종회 경북 포항시 자명리 소재한 募九堂 과 遠募亭 을 방문한 종친들을 포항종회 종부님들께서 음식을 장만하여 맞이하시는 모습과 원모정 앞뜰에서 종친들의 음식을 드시면서 좌담하시는 모습입니다. 맨위에 사진은 포항종회 종친들께서 타지역종친들의 방문을 환영하는 현수막을 마을 어귀 외양간에 붙혀놓으신 사진이며, 긴행렬은 신작로에서 모구당까지 걸어서 들어가시는 해주최씨 종친들의 행렬입니다. 입향조께서 포항에 정착하신후 우리 해주최씨 종친들이 300여명이 방문하신것은 처음있는일이라며 포항종회 진하 회장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종친여러분 찌는듯한 더위속에 애많이 쓰셨습니다.
2007-08-23
英林 榮吉
32世 응칠(應七)
대호군(大護軍) 순조31(1831)~1917
一名 창붕(昌鵬)
경오보에는 창붕(昌鵬)으로 기록되고, 자는 태여(台汝), 호는 항재(恒齋)이며 좌랑공 정(埥)의 18世孫이며 증가선대부호조참판겸 동지의금부사(贈嘉善大夫戶曹參判兼 同知義禁府事) 두규(斗奎)의 4아들 중 둘째아들이다.
***승정원일기 ***
고종 28년 신묘(1891, 광서 17) 5월 20일(계미) 맑음
좌목
신묘년 2월 삼일제에 입격한 유학 이긍로 등을 감시 복시에 응시하게 할 것을 청하는 예조의 계
(중략)
동년 동월 기내 유생(畿內儒生)의 응제에 입격한 유학 (중략) 최응칠(崔應七)ㆍ황중환(黃中煥)ㆍ황장환(黃璋煥)을 모두 감시 초시의 방목 끝에 붙이도록 명을 내리셨으니, 모두 이번에 응시를 허락하도록 해 주소서.’라고 보고해 왔습니다. 이긍로 등 125인을 모두 이번 감시 복시에 응시를 허락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고종 28년 신묘(1891, 광서 17) 7월 10일(임신) 맑음
좌목
기내(畿內) 유생의 응제에 입격한 김정룡 등을 원래의 방목에서 빼고 처벌하게 하겠다는 조만승의 계
○ 조만승이 아뢰기를,
(중략)
최응칠(崔應七), (중략) 등은 엄하게 신칙하였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릅쓰고 응시하였으니, 선비들의 풍습으로 헤아려 볼 때 너무도 놀랍습니다. 원래의 방목(榜目) 중에서 우선 빼버리고 해당 유생들을 모두 해조로 하여금 해당되는 형률을 살펴보아 처벌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노진두(盧鎭斗), 김재희(金載煕)의 봉미(封彌) 안에 잘못 쓴 부분이 있으니 원래의 방목 중에서 빼버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고종 30년 계사(1893, 광서 19) 2월 15일(무진) 비
좌목
병비의 관원 현황
○ 병비에, (중략)
부호군에
(중략)
최응칠(崔應七),
(중략) 이상을 모두 단부하였다.
***부호군 [副護軍](종4품)***
그밖에 당시에 받으신 교지를 元孫인 元求가 보관하고있다. 교지중에 1893년 (光緖19年)3월에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嘉善大夫 同知中樞府事)로 제수되신 교지가 있으며, 그에따라 부친과 조부에게도 증직이 된 교지가 현재 전하고있다.
배위는 정부인 창원황씨(昌原黃氏)로 父는 찬규(粲奎)이다. 슬하에 아들 정우(廷禹)와 세 따님이 있다. (묘는 경북 영일군 기계면 탑계동 천옥산 경좌에 있다).
모구당(慕九堂)
중건된 모구당(慕九堂). 좌랑공파포항종회. (2007. 4. 8)
❖慕九堂의뜻은 구재(九齋)를 추모하는 학당이라는 뜻.
모구당은 포항시 남구 연일읍(延日邑) 자명(自明)1리에 해주최씨좌랑공파포항종회에서 주관하여 옛 서당을 중건하여 세운 서당(書堂)이다.
慕九堂, 포항시 자명동 2007. 4. 8. 옛 서당 중공기념제를 올린 헌관들(황병한 연일읍장. 포항종회장 최진하. 농협조합장 조영만 고문 최진두 등. 모구당은 당초 순조21(1816) 3월에 축조된 건물로 여러 선비 문장을 배출하여 문풍(文風)을 일으킨 유서 깊은 향리의 서당이었으며, 6.25 한국전란 직후에는 달전초등학교 자명분교로 쓰이기도 했다. 그러나 건물이 노후하여 더 유지하기 어려워 항재(恒齋) 응칠공(應七公)의 현손인 원구(元求,문화재전문건설업경영)종친이 헌신적으로 협찬하고, 포항종회에서 후원하여 2007년 4월 8일 이 옛 서당의 중건(重建)준공을 보았다. 준공식은 지방 유림과 유지가 모여 함께 축하하고 감사의 헌작을 올렸다.
한편 좌랑공 정(埥)조의 18세손인 항재 응칠(應七)공을 영일 향토 일월지에 이르기를 “(구)흥해군 남부면에 자방(自芳) 부락이 있어, 최문장(崔文章)으로 통하는 젊은 선비가 유시부터 역학(力學)하여 문장. 경사(經史)에 통달하니 당대 사람들은 거유(巨儒)로서 영남의 유종(儒宗)이라고 불렀다“는 말이 있다.